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 기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 묵상하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6장28절부터 47장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나그네의 삶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짧은 삶 뒤에는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그네의 삶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저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계속되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쉽지가 않습니다. 물질 만능 주의가 팽배한 세상이라고 해서, 물질로 행복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소위 가진 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없으면 편하고 행복하느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정해주는 기준, 물질, 명예, 권력, 성, 지식 등 세상의 어떤 기준도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정해주는 기준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오직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였기에 할 수 있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인생,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야곱은 부자였습니다. 창세기 47장 1절 말씀을 보면,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 야곱의 식구는 이미 약과 소와 모든 소유, 즉 지금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기근만 아니면, 먹고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화해하기 위하여 먼저 보낸 예물에 대하여 창세기 32장 14절과 15절에 나오는데,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이정도면, 그 당시 한 왕국이 속국임을 자청하며 제국에게 바쳐야 할 많은 재물이었습니다. 그정도 되는 큰 재물을 형에게 바칠 수 있었고, 또 창세기 34장에 보면, 세겜 땅에 있는 모든 재물과 가축들을 빼앗았습니다.
만일 물질이 우리의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한다면, 어찌됐든 부자가 된 야곱은 분명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선 야곱은 바로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쉬운 성경에서는 “제 조상들보다는 짧게 살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험악한 세월, 고통스러운 삶, 이미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의 삶은 험악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또한 높은 지위, 큰 권세, 강한 권력 등,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라고 한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복을 빌어줘야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식량이 없어서 다른 나라에 온 처지인 야곱이 바로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7절과 10절, 연속해서 두번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나그네 길을 걸어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농경 문화가 활발하여 도시 국가를 이루고 있는 애굽이라는 나라에 야곱의 가정은 나그네처럼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그들의 도시로 들어가 한 가족처럼 산 것이 아니라, 나그네처럼 도시를 떠나 고센 땅에 머무르게 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잠시 세상에 왔다가 하나님 품에 다시 돌아가는 나그네처럼 야곱은 고센 땅으로 갑니다.
그렇다면 고센 땅에 터를 잡게 된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고센 땅은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가장 적합한 땅입니다. 애굽의 동쪽에 위치한 고센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들어가는 통로, 반대로 가나안으로 돌아가기가 가장 쉬운 땅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받은 약속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사 다시 하나님의 약속에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약속을 받은 야곱이나,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며 동행하는 요셉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었고, 고센은 요셉과 야곱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나그네 길을 걸어 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주십니다.
둘째로, 야곱이 고센 땅에 머무르는 이유는 민족의 순수성과 신앙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유다의 경우 이미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한 예가 있었기에 다른 민족과 함께 살 경우 민족의 순수성은 곧 깨어질 위기에 놓이기 되고, 창세기 46장 34절 말씀을 보면,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을 가증히 여기고 싫어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좋은 터를 잡고 풍부한 물을 가지고 농업에 종사했던 애굽 사람들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방랑하는 유목민들을 무시하였고, 일찍부터 도시를 이룬 사회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농경 문화를 하며 꼭 필요한 동물이었던 염소, 양, 소 등을 신성시 여기며 우상으로 만들어서 섬기던 애굽 사람들에 비하여, 목축을 하는 사람들은 가축들을 거칠게 다루고 필요에 따라 잡아 먹었기 때문에 신을 무시하는 야만인, 혹은 저주받을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애굽과 야곱의 가족들이 한 곳에 살게 될 경우, 신앙적인 대립 혹은 혼합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요셉과 끝까지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끄시는 야곱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농지가 아닌 목축을 택합니다. 이미 농업과 목축업을 겸업하고 있었던 야곱의 가족이 농업을 포기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믿음을 위하여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나그네를 위하여 예비된 땅, 고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땅,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기 위한 고센 땅은 47장 11절 말씀,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쉬운 성경으로 “요셉은 파라오가 말한 대로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주었습니다. 그 땅은 라암세스 성에서 가까웠습니다.”
애굽 사람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이기에는 가축이나 칠 수 있는 쓸모 없는 땅, 나그네들이나 살만한 땅, 고센이었지만, 그 땅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를 위해 예비한 땅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이 믿음으로 준비한 땅이었고, 동시에 애굽에서 가장 좋은 땅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한 세상은 분명 만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되고, 어렵고, 계속되는 어려움과 위협 속에 노출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살면, 야곱의 가정을 위해 고센 땅을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주관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가장 좋은 땅, 우리에게 꼭 필요한 땅에서 살게 하시며 12절 말씀처럼 오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고센으로 들어가고, 거기에 임하는 하나님의 형통이 우리의 삶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