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로 기쁘고 행복한 하루를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 묵상하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38장 1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심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삶을 달라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무시한다면, 오늘도 우리를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준비 중인 죄의 유혹을 이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야곱의 4째 아들이었던 유다는 이런저런 악행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전혀 인정하기 않았기 때문에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일에 동조하였고, 동생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파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악행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도 학습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고, 다방면으로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지만, 신앙교육, 믿음을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말씀 속에 유다의 첫째 아들 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을 죽였다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악했는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다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엘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그가 가족이 보기에도 악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죄가 정말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여도 자신의 죄는 잘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혼법, 계대결혼, 역연혼 등으로 불리리는 계대 관습은 결혼한 가정에서 후대가 없이 남편이 죽는 경우 그 형제들이 후손을 잇는 의무를 감당하는 것으로, 신명기 25장에서 예외 조항이 제정되기 전, 특별히 율법이전의 시대에는 다른 대안이 없이 의무적으로 지켰습니다. 바로 전, 형 엘은 악을 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죽이셨다라고 말씀하였는데, 유다가 동생 오난에게 가문의 장자인 엘가문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오난이 자손을 낳아주는 것이 의무라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받지 못한 상속권을 형의 자녀가 될 아이에게 주는 것이 싫었기에 거역합니다. 얼마전, 하나님께서 그의 형이 악을 행하여서 죽임당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짓는 죄는 죄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 역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은 당연히 악한 일을 알면서도… 형은 죽었지만 난 괜찮겠지… 아버지도 죄인인데, 다른 죄인들도 많은데 나도 괜찮겠지… 그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함으로 죄를 짓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며 우리도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과의 동행을 인정하지 않고,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생활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거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의 모든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하여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을 무사히 넘겼다고 죄인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힘입어 죄의 모든 결박은 끊어지고 거룩하고 경건한 하루를 보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죽임을 당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유다는 계속해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의 자녀가 악을 행할 때 그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이 죽고, 계대 관습을 행하지 않은 둘째 아들이 죽었는데, 유다는 자녀들의 죄를 며느리 다말에게 넘겨버립니다. 다말이라는 여인가 자신의 가정에 들어와 한명도 아니고 두명의 아들을 죽게 했다고 생각하며 11절 말씀을 보면, “그후에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있어라. 그리고 내 막내 아들 셀라가 어른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말고 있어라.” 유다는 셀라마저도 그 형들처럼 죽을까봐 두려웠습니다. 다말은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엘과 오난이 죽은 이유는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는데, 다말과 함께 있으면 마지막 아들도 죽을까 염려하고 죄를 다말에게 전가합니다. 이 당시, 결혼한 여인이 다신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말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 모두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다말을 쫓아냈으며, 14절과 26절 말씀을 보면 유다는 셀라가 장성하였음에도 다말에게 줄 마음이 없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즉, 계대 결혼을 하지 않는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서 오난을 죽였는데, 유다 역시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다의 죄는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38장 초반부에, 유다가 가나안 여인을 만나 동침하여 아이를 나을 때에, ‘가나안 사람’ ‘딸을 보고 데리고 동침하니’ 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원적으로 이 말은 정상적으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정욕에 의하여 강제로 범해져 자녀를 낳게 된 것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나와도 여인의 이름이 나오지 못할 만한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유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 특별히 자신의 정욕에 따라 살며, 불법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며 살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삶의 주체가 자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죄의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14절부터 나오는 다말을 창녀라고 생각하여 동침하는 일도 유다가 얼마나 죄에 물들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15절과 21절에 다말을 ‘창녀’라고 여기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창녀의 어원적 개념은 ‘우상 숭배의 일환으로 거룩하게 성별된 여자’를 의미합니다. 사실, 14절에 불륜을 저질렀던 곳이 애나임 문이라고 나오는데, 이곳은 가나안 종교의 신전 문이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위해 성별된 성창으로 분장한 다말에게 유다가 들어간 것이고, 바알과 아스다론 신의 제사 의식 중 하나가 신전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다는 바알 신의 제사 의식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악한 죄인 유다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유다 가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혈통을 잇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지금의 모습이 말할 수 없는 죄로 얼룩져 있을 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네가 나보다 옳다고 말하며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음, 즉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며,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유다를 통하여 구원의 길이 열린 것처럼, 우리도 이전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바로 설 때에 우리가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이웃에게 놀라운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삶의 모습, 거룩한 삶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는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심으로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지고 자유로워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승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