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입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를 보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 묵상하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37장 18절부터 3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함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집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버릇처럼,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삶을 말하지만, 정말 우리의 자아가 죽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예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과 교회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원수도 능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아가 아닌,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진정 믿는다면, 우리는 한시도 허투루 살 수 없습니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매시간을 열심히 살며, 어떠한 죄도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영부영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성 앞에서 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37장 2절 말씀처럼 그들은 생활 속에서 서슴없이 계속되는 악행을 행하였고, 그 죄는 더 큰 죄를 낳게 하였습니다.
최소 130km이상을 걸어온 요셉을 발견한 형들은 측은한 마음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까이도 오기전에, 멀리서 요셉을 보자 마자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형들은 요셉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 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죄를 따질 수 있었겠지만, 사실, 그것이 사람을 죽이고 살려야 할 만큼 큰 죄는 아닙니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던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들이 한마음이 되어 요셉을 죽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비교해보자면 형들이 지금껏 지은 죄도 요셉보다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형들은 요셉의 죄를 자신들의 손으로 심판하려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까지 악한 마음을 품었을까요? 왜 그들이 한마음으로 요셉을 보자 마자 죽이려 했을까요?
첫번째로, 그들의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 않고 계속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계속 아버지에게 악한 행위를 고자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악행을 고자질하는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악한 일에 동조하지 않고 혼자 거룩한 척 살아가는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서슴없이 악행을 저질렀던 그들은 마음 속에 미움이 커져가고, 죄가 점점 더 큰 죄를 부르고, 죄를 지어도 죄책감조차 없어질 정도로 악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직 죽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동생을 죽이려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이미 마음으로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맏형 르우벤의 권유로 아직은 살려 두고 깊은 구덩이에 그를 빠뜨려 놓았지만, 그를 죽이려고 하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르우벤을 제외하고는 구덩이에서 결국 죽을 요셉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음으로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은 25절 말씀처럼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동생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마음으로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듯, 죄를 지면서도 태연하게 서로 둘러 앉아서 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작은 죄일지라도, 아버지에게 일러서 혼날 정도의 작은 악행이라도 그것이 계속되면 더 큰 죄를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 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죄는 더 큰 죄를 낳았고, 심지어 살인이라는 무서운 범죄 앞에서도 태연하게 밥을 먹는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우리가 이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덮어두고 있는 죄는 없는지 말씀의 거울에 철저히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심을 인정할 때에 절대 할 수 없는 삶의 모든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참된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자아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죄를 지어서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는 벌을 받거나 즉결 심판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 문을 닫았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새롭고 특별한 하루를 보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둘째로,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혔다는 것은 상속권을 요셉에게 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형들은 요셉이 없어야만 아버지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마치 마태복음 23장 13절에 나오는 율법학자와 바리새파의 위선자처럼, 하늘나라의 문을 막아 자신들도 못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았으며, 아버지에게 거짓으로 속였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요셉 다음을 잇는 새로운 상속자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오랜 애통 뿐이었습니다. 혹시나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다음 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아버지를 위로하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어떤 위로도 받지 않았고, 그들은 20년 동안 절망에 빠져버린 아버지를 볼 뿐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 이기적인 계획이 눈 앞에서는 승리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심판하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야곱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을 때 가정이 파괴되고 갈라졌던 것처럼, 이기적인 생각에 아들들이 야곱을 속이고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을 때, 가정에는 슬픔만이 가득하게 된 것을 교훈 삼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과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죄의 악순환은 하나님의 거룩으로 끊지 않으면 대를 이어 고통과 애통이 될 수 있음을 말씀에서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인정하는 삶, 기도로서 하나님께 한 걸음씩 다가는 삶, 말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삶, 우리가 죄를 능히 이기고 믿음으로 사는 삶의 첫걸음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한 걸음 씩 내딛으시며 기쁘고 행복한 하루를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

